2012년 여름. 최고의 식사. 할머니의 밥상




외할머니의 연세는 올해로 아흔 다섯이 되신다.

늘 건강하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통화를 하고 나면

귀도 잘 안들리시고

또 소화도 잘 못하시곤 한다.


6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거의 가지 않았었다.

2008년에 한국에 간 것도 거의 6년만에 방문을 한 것이고

2011년에 간건 그 후 3년 만인 것이다.

2011년 부터는 꾸준히 일년에 한번, 많게는 두번씩 한국을 방문한다.


그리고 내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할머니를 뵈러 가는 것이다.


2014년 1월에도 일주일간 한국을 다녀왔다.

할머니 댁에서 3일을 지냈다.

할머니는 혼자 지내신다.

옆 아파트에 이모가 살고 계신다.


원래 계획은 이틀만 자고 서울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처음으로 잘 살아라.. 라고 말씀 하셨다.

늘 언제 또 오니, 여름에 보자 라고 말씀하셨는데

잘 살아야 한다 라고 말씀 하신 할머니의 말에

서울에서의 스케줄을 취소하고

하루를 더 보내고 왔다.


나는 어렷을 때

부모님이 병원 일로 바쁘셔서

집에 계신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가 키우셨다.


나는 어렷을 때

밤에만 들어 오시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분명 허전함을 느꼈고

그 허전함은 상처로, 상처는 분노로 가끔은 표출이 되곤 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집에 계신 할머니.


나의 습관은 집 구석 구석, 특히 방문을 걷어 차는 것이었는데

소리지르고 방문을 떨어져나갈 만큼 걷어 차도

할머니는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다.


쿵쾅 쿵쾅 쿵쾅

난폭했던 초등학교 어린이가

밤에 부모님이 귀가 하시면 순한 아이로 변해서

그리운 엄마 품에서 자다가 아침에 학교에 가곤 했다.


거주지를 다시 일본으로 옮기며

할머니와 헤어져 살게 되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 만에 한국을 갔을 때도

제일 먼저 할머니를 뵈러 갔었다.


그리고 그 때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어린 것이 지도 얼마나 한이 있었으면 그리 온 집안 문을 걷어 찾겠노..

한이 있으면 풀어야지,

그래서 내 니를 가만히 뒀다.


그 때 돌아보니 내 안에 쌓여 있는 한은 없었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
그래서 더 죄송하고

그래서 더 잘 해드리고 싶다.


올해 1월에 한국에 갔을 때

할머니께서 창고에 가셔서

포항에서 직접 사오신 김이라며

한 봉다리채 싸서 주셨다.

그리고 또...

할머니가 직접 밥상을 차려 주셨다.


지금 내 나이에 연로한 할머니 댁에 가서 밥 차려달라고 하는게

이상할 수도 있는데

할머니는 지금도 직접 밥상을 차리시길 원하시고

내가 꼭 그 밥을 먹길 원하신다.


그래서 내가 가서 밥상에 앉아 할머니와 한끼 식사를 하는 것이

효도이고 그것이 할머니의 기쁨인 것이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한 달 만 더.


그럼 나는 또 다시 한번

내 인생에서 또 다시 한번

할머니와 마주 앉아 밥 한끼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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